한글 자형학 원리를 바탕으로 한 모아쓰기 딩뱃 폰트
자음을 바탕으로 한 소리값을 중심으로, ‹소리글체›
모음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이오체›
28개 한글 자모와 28수의 관계를 중심으로, ‹별글체›
요약
한글의 자형학 원리를 적용한 모아쓰기 딩뱃 폰트 프로젝트이다.
언어는 청각적 수단인 ‘말’과 시각적 수단인 ‘문자’로 나눌 수 있다. 현대의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는 저장이 불가능한 ‘말’에 비해, ‘문자’는 기원전 호모 사피엔스 시절부터 수백만 년 이상을 함께 진화해온 가장 일반적인 시각적 의사소통 체계로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기록되어 왔다. 그러한 문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해준 인쇄의 발전은 일관성을 갖춘 구조적인 인쇄용 글자, 즉 폰트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디지털 인쇄의 도입 이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폰트를 개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폰트의 개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폰트를 글자의 형태가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던 것을 넘어서서, 그 대상 자체를 조금 다른 개념으로 확장하여 바라보기 시작한다. 글자의 자리에 그림이나 기호, 일러스트를 입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그림 문자만으로 구성한 폰트를 ‘딩뱃 폰트’라고 한다. 폰트 회사나 디자이너에 따라 딩뱃, 장식활자, 심벌 폰트(symbol font), 파이 폰트(PI font), 에모지(絵文字) 등으로 달리 표기하기도 하며,(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타이포그래피 사전›, 안그라픽스) 일반적으로 a~z, A~Z, 0~9의 자리에 문자 대신 그림을 배정하여 자판을 누르면 글자 대신 그림 문자가 송출된다.
이러한 기존 딩뱃 대부분은 로마자 기반으로 제작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문자 자체의 오래된 역사나 로마자 중심의 타이포그래피, 많은 사용자와 개발자의 수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로마자가 택하고 있는 ‘풀어쓰기’ 표기 방식이 딩뱃 폰트를 제작하기에 용이했을 것이다. ‘풀어쓰기’는 한글의 ‘모아쓰기’와 대조되는 표기 방식으로서, 한글이 자모음을 한 음절의 초성, 중성, 종성으로 합하여 모아쓰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스 문자나 키릴 문자처럼 낱소리를 모두 풀어 헤쳐서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나열하는 표기 방식을 말한다. 조합으로서 완성되는 한글 자모와 다르게 독립적으로 사용 가능한 로마자는, 각 글자의 자리에 특정 이미지를 1:1 치환하는 것만으로 딩뱃 폰트를 구성할 수 있다. a~z, A~Z, 0~9에 들어갈 62개의 이미지만 있다면 바로 딩뱃 폰트 하나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나열형 풀어쓰기 딩뱃 폰트와 다른 조합형 모아쓰기 한글 딩뱃 폰트가 있다면, 조합되는 글자에 따라 위치나 형태가 달라지는 한글의 특성을 고려하며 체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한글의 자형학적 원리와 사상을 적용한 모아쓰기 딩뱃 폰트, ‘소리글체’와 ‘이오체’, ‘별글체’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풀어쓰기가 아닌 모아쓰기 표기 방식을 택한 만큼, 단순한 이미지들의 조합이 아닌 한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원리와 사상을 담은 체계적인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폰트를 목표로 한다. ‘소리글체’는 자음을 바탕으로 한 소리값을 중심으로, ‘이오체’는 모음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별글체’는 28개인 한글 자모와 동양 전통 별자리 체계인 28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만든 딩뱃 폰트이다.
이는 문자가 단순히 말이 형태화된 것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능력인 상상력과 창의력을 담은 그릇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실비 보시에, ‹생각을 담는 그릇 문자›) 또한 서양 타이포그래피 중심인 그래픽 디자인에서 모아쓰기 딩뱃 폰트를 통해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간과되어 온 한글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한다.
연구 목적
한글은 1443년에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창제되어 550년이 지나면서 크고 작은 형태적 변화를 거쳐 왔다. 광복 이후부터 오늘 날까지의 글꼴 변천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원도에 의한 주조 활자시대, 둘째 원도에 의한 사진식자시대,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디지털 폰트 시대이다. 그 중 공병우박사가 타자기를 들여온 1900년대 시대부터 디지털 폰트가 사용되기 시작한 2000년대까지, 한글 폰트는 양과 질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 과정을 거쳤다.(활자를 통해 본 디지털 시대 글꼴의 변화 2012.01.19) 형태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이다.
서양 로마자 폰트는 문자의 오래된 역사에 따라 폰트를 단순히 글자의 형태로 인식하던 것을 넘어서 글자의 자리에 그림이나 기호, 일러스트를 입력하여 그림 문자만으로 구성된 폰트인 ‘딩뱃 폰트’를 만들어왔지만, 한글을 기반으로 한 딩뱃 폰트의 연구는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글 폰트를 미세하고 치밀한 형태의 영역의 개념을 넘어서서, 한글을 매개로 하여 인간 고유의 능력인 상상력과 창의력을 담은 그릇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는 서양 타이포그래피 중심인 그래픽 디자인에서 모아쓰기 딩뱃 폰트를 통해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방법
현대에 사용하지 않게 된 4개의 글자까지 더한다면, 한글은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로 구성된 총 28개의 음소문자이면서, 2019년 기준으로 한글은 180종류의 문자 중 유일하게 ‘반포일’, ‘만든 이’, ‘창제 원리’를 알 수 있는 문자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간송 전형필 선생께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 비밀리에 지켜오다가 해방 후에 한글의 연구를 위해 세상에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이같은 사실들을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한글에도 과학이 숨겨져 있다? 한글에 숨겨진 과학, 2018.10.10)
그러한 해례본의 창제 원리에서는 한글 형태의 근거까지도 밝히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시, 세종은 발음 기관의 모양과 형태를 모방하여 자음이란 형태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다른 언어들에서는 간과하고 생략해버린 모음에도 형태를 부여하였고, 그렇게 자음과 모음의 자모를 추출하여 음소란 단위를 만들어낸다.(한글의 모아쓰기 표기법, 한글로망 #16) 즉, 한글의 형태는 임의의 형태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문자가 만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당위성이 있는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본 연구의 범위는, 이러한 한글 자형학 원리의 근간을 유지한 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한글 폰트 체계에 적용한 새로운 구조와 형태의 이미지 폰트, 한글 딩뱃 폰트를 제작한다. 이를 위해 한글 제작에 영향을 끼친 이론과 사상에 대해서 조사하고 분류한다. 첫 번째 자음, 두 번째 모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자모의 갯수로 나누어 한글 딩뱃 폰트가 어떠한 정보를 바탕으로 당위성을 갖추어 제작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딩뱃 폰트
딩뱃 폰트란, 분야별로 특징이 있는 그림이나 기호를 클립아트가 아닌 서체로 제작하여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한 ‘이미지 폰트’라고 할 수 있다. ‘A’의 자리에 그림이 있어서 ‘A’를 자판에서 치면 해당하는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딩뱃 폰트로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윈도용으로 제작한 윙딩체(Wingdings), 인터넷 익스플로러 4.0 용으로 제작된 웹딩체(Webdings)가 있다.(이것도 폰트라고? 어메이징한 ‘딩뱃 폰트’의 세계!, 2014.02.11) 예를 들어, 일반 폰트인 Univers로 키보드의 ‘A’를 타이핑하면 ‘A’가 출력되지만, 딩뱃 폰트인 Wingdings 으로 타이핑하면 ‘A’가 출력된다. 이러한 딩뱃 폰트들은 완성도 있는 그림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그래픽 소스로 활용될 수 있다.
기존 딩뱃 폰트의 대부분은 서양 로마자 언어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키보드의 ‘A’ 버튼을 눌렀을 때 로마자 ‘A’에 배정된 이미 완성되어 있는 독립적인 이미지 기호를 입력하기에는, 독립적인 글자가 송출되는 로마자 체계가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글 구조를 기반으로 한 딩뱃 폰트를 제작하기에는 초성, 중성, 종성을 합하여 쓰므로 로마자에 비하여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Efon이나 Stars 등 해외에서는 딩뱃 폰트가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이미지로 말해요, 딩뱃, 2010.6.10) 사실 국내 폰트 회사들은 딩뱃 폰트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한글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수가 많지 않고, 또한―완성형 폰트를 기준으로―하나의 한글 폰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11,172개의 낱글자 하나하나를 모두 그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한글 사용자의 인식 자체가 한글 폰트를 한글 자모의 형태를 정교하게 다듬는 시각적인 영역의 것으로만 한정지어 생각하거나, 혹은 폰트는 한 국가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무료로 사용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할 정도라(“한글인데 왜 돈 내?” 한글서체의 현실, 2017.10.10) 수요와 보상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글 딩뱃을 개발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모아쓰기
모아쓰기란,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타난 음절 이루기―성음법― 규정에 따라 닿소리와 홀소리를 음절 단위로 한 덩어리씩 모아 쓰는 표기 방식을 이야기한다.(국립국어원 ‹알고싶은 한글›) 예를 들어, ‘곰’과 같이 한글 자모를 음절 단위로 모아 써서 표기한다. 이와 반대로, ‘ㄱㅗㅁ’과 같이 한글 자모를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은 풀어쓰기라고 한다.
전통적인 한글 표기 방식인 모아쓰기는 1443년(세종 25)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래로 유지되고 있다. 개화기 무렵에 서양의 말과 글을 접하게 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낱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풀어쓰기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으나, 전통적인 모아쓰기 방식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모아쓰기 딩뱃 폰트의 당위성
500여 년간 이어져 온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도 일치하는 모아쓰기는 한글의 특징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는 표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폰트 제작에 있어서 한글의 모아쓰기는 뜨거운 감자이다. 최현배 선생의 「글자의 혁명」에서 모아쓰기가 활자의 수를 많게 하고 그로써 인쇄와 기계화에 불편을 끼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모아쓰기›). 하지만 이 인쇄와 기계화의 불편은 지나치게 강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화의 문제, 가령 타자기의 문제는「글자의 혁명」이 쓰일 때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 이후 쉽게 해결되었고 더구나 근래 컴퓨터의 발달로 이 문제는 이제 전혀 염려거리가 아니게 되었지만 인쇄의 문제도 각도를 달리하여 생각할 수 있다(한글의 모아쓰기 방식의 表意性에 대하여, 이익섭).
이러한 한글의 모아쓰기 당위성은 그대로 딩뱃 폰트에 적용될 수 있다. 기능적이고 정신적인 당위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한글의 모아쓰기 당위성에 대해서, 모아쓰기 한글 딩뱃 폰트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물론 한글의 풀어쓰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의의에 대해서는 무시할 순 없겠지만, 한글 딩뱃의 시작으로는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제시한 모아쓰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 모아쓰기 방식은 적은 수의 자모로 11,172개의 기호를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3벌식 모아쓰기 딩뱃 폰트의 당위성
한글에서는 가의 ㄱ, 각의 ㄱ, 곡의 ㄱ, 괜의 ㄱ이 같은 ㄱ이면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어떤 글자와 결합하였는지, 어디에 위치하였는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를 그려야 하는 완성형 한글 폰트는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는 세벌식 폰트가 있다. 세벌식 폰트는 한글의 한 문자가 각각의 위치에 걸맞는 형태의 초성·중성·종성을 조합해서 만드는데, 초성과 종성 양쪽에 동일한 형태의 자음이 사용되는 폰트를 말한다. 기존의 폰트에서는 각 자모의 모양은 단순히 초성·중성·종성 각자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셋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한다.
이런 글꼴은 풀어쓰기에서처럼 한글 글꼴 디자인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디자인할 글자가 한글 완성형의 1만여 글자에서 기본 한글 자모 수십 개로만 팍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려하고 미세한 한글의 형태를 탐구하는 연구가 아니라 한글 딩뱃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세벌식 딩뱃 폰트는 서체 디자이너가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폰트 연구를 성취하기에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모아쓰기 딩뱃 폰트 개발 키워드 도출
한글은 만든 사람과 시기가 분명하다거나, 애민정신을 바탕에 둔 문자라던가 등의 특징이 분명한 문자이지만, 주목할만한 가장 독특한 한글의 특징은, 바로 모아쓰기 글자라는 점과 자모음의 글자의 형태가 인간과 자연을 바탕으로 형태적 당위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이미 1446년에 모아쓰기를 비롯한 성음법과, 발음 기관과 천지인으로부터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훈민정음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째, 발음 기관이라는 인간으로부터 온 자음. 둘 째, 천지인 삼재 자연 사상으로부터 온 모음. 셋 째, 이런 28개의 자모를 모아쓰기 하는 조합형 글자. 이렇게 한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대로 제작하고자 하는 한글 딩뱃 폰트의 키워드로 설정하였다.
자음을 바탕으로 한 소리값에 대한 고찰, ‹소리글체›
한글 자음의 형태는 임의적인 모양의 형태가 아니라, 혀나 입술같은 소리를 내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차용한 것이다. 소리의 특성을 글자 모양에 반영시킨 체계성을 갖춘 글자인 것이다. 발음 기관 형태를 바탕으로 다섯 개의 기본 자음 ㄱ, ㄴ, ㅁ, ㅅ, ㅇ의 모양을 잡았고, 나머지 글자들도 기본 다섯 자음에서 가획되는 방식으로 형태를 구성하였다. 이 기본이 되는 5글자의 형태만 조절하여 지금과 다른 형태로 자음을 시작한다면, 나비효과처럼 나머지 글자들의 형태도 흥미롭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발음 기관의 모양을 단순화한 기존 한글과 다르게, 기본 다섯 자음이 가지고 있는 소리의 국제 음성기호의 형태를 모듈로 한 폰트를 제작하고자 한다. 이는 한글의 구성이 한글과 소리를 연결하는 매체가 몸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다른 기본 모듈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기하학적인 새로운 형태를 도출할 수 있다.
소리를 내는 발음 기관의 모양으로부터 나온 글자라는 뜻과 또한 표음 문자의 순우리말인 ‘소리글’이라는 이름을 붙여 폰트의 이름을 ‹소리글체›로 지었다.
모음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에 대한 고찰, ‹이오체›
인간의 신체에서 시작한 자음과는 다르게 모음은 자연 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천지인 삼재로부터 온 ‘ㆍ’, ‘ㅡ’, ‘ㅣ’나, 음양 사상의 음성 땅과 양성 하늘, 중성 사람과 함께 이루는 삼조화 사상을 통해 천지자연의 문자 철학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訓民正音解例本에서 모음을 설명하는 부분 중, 모음 ‘ㅗ’ 부분을 살펴보면, ‘ㅗ’라는 글자는 음양 중 하늘 양, 오행 중 물, 성수는 1이라는 속성을 배양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음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구조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이미지가 있다. 바로 ‘하도’이다. ‘하도’는 오행성의 운행을 나타낸 천문도로서, 한글 모음 구조도와 상당히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치한 수나 모음의 확장, 가획의 방향 등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음이 음양오행사상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유사성을 바탕으로, 하도의 조합 방향을 딩뱃 폰트의 핵심 자료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모음에 할당한 음양과 오행, 성수, 조합의 방향 값을 정리하면 위와 같다. 오행 5개의 개별적인 음양 그래픽을 설정하였고, 할당된 숫자와 조합의 방향까지 적용하여 각각의 그래픽을 만들었다. 모음이 중요한 폰트였고 형태 자체가 화려했기 때문에, 자음은 기존의 형태를 차용하기로 한다.
폰트의 이름은 ‹이오체›. 음양오행이라는 개념과 분류가 중요했던 만큼, 이원오행으로부터 딴 이름이다.
28개의 한글 자모와 3원 28수의 관계에 대한 고찰, ‹별글체›
훈민정음에는 세종이 혀나 입술같은 발성기관을 본따 28개의 한글을 디자인했다는 자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왜 하필 28개라는 갯수로 디자인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세종은 즉위 후 정치 활동 뿐 아니라 여러 실용 학문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는데, 생활 과학, 그 중 천문학에 특히 많은 애착을 가지고 투자를 하였다. 1,467개의 별들의 위계를 거의 완벽하게 정리한 천문학서 ‹천문유초›와 별의 갯수나 빛의 밝기가 현대의 것과 비교해도 놀랍도록 정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리뉴얼 등이 바로 천문학 투자의 증거이다
천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28수다. 이 28수는 서양의 황도 12궁에 대응하는 동양 전통 별자리 체계로서, 28개의 한글에 대해 궁금해 하던 중 동일한 28이라는 숫자는 별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리서치 결과, 세종이 훈민정음을 제작하는 3년의 시간동안 총 28번 첨성대를 방문하며 별을 연구한 사실과, 세종 즉위 28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사실로써, ‘28’이라는 숫자는 동양 별자리 28수로부터 출발하여 한글 28개를 제작한 것은 아닐까라고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천문은 단순히 천체의 별을 기록하는 것만은 아니다. 천체의 운행과 현상 속에서 규칙을 파악하여 다양한 가치까지도 생성하는 것이다. 정확한 시간이 중요했던 농경 시대에 정교한 때와 기후의 정보를 제공하는 실용적이고 천문학적인 개념부터, 국가와 임금, 백성들의 흥망성쇠를 점치는 신앙적이고 점성술적인 영역까지. ‘천문’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하늘의 글자, 즉 메시지인 것이다.
이렇듯, 별은 천문학적 별과, 점성술적 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천문학적 별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 된 ‘글’자가 «한글»이라면, 나머지 절반인 점성술적 별에서 모티프를 얻은 디자인 된 ‘그림’ 글자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그것이 바로 «별글체»다. 실용적으로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에 대응하여, «별글체»는 신앙적으로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하는 별의 소리, «훈민성음»이 바로 «별글체»의 제작 배경이다.
서양의 별자리 88개가 카테고리의 분류 없이 단순히 나열되어 있다면, 동양의 별자리 3원 28수는 3원이라는 세가지의 체계와 사방칠수라는 네 개의 영역 하에 1,467개의 별이 289개의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3원은 태미원, 자미원, 천시원으로 나뉘고, 사방칠수는 동방, 북방, 서방, 남방칠수로 분류된다. 사방칠수는 ‘칠수’라는 이름처럼 7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것은, 서양의 별자리 하나가 하나의 이름으로 1:1 대응한다면, 28수는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되는 특성을 가진 한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별자리 이름도 여러가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별자리가 다채로운 신화를 가진 것처럼, 동양의 28수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부하 별자리 개념이다. 28수는 개념적으로 28개의 별자리라기 보다는 28개 소대의 소대장에 가까운 것으로, 28개 별자리 군마다 각각 부하 별자리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북방칠수의 실의 부하 별자리는 107개이고, 남방칠수의 유의 부하 별자리는 3개로, 약 35배 차이가 난다.
위의 표는 28수를 정리한 것으로, 크게 세 가지의 정보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운행 방위, 빛의 밝기, 별의 갯수, 보이는 시간같은 객관적이고 물리학적인 정보이고, 두 번째는 칠정, 상징, 별자리의 크기와 기질같은 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정보이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어느 별에 강하고 약한지, 어느 별과 친한가 같은 별끼리의 관계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까지 있다.
‘별자리’라는 말 자체를 다시 풀어 살펴보았다. ‘별’과 ‘자리’가 합쳐진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수많은 28수의 정보 중 몇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향하는가의 정보들을 제작 구성 원리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구성원리 ‘별’, ‘자리’ 중, 첫째 ‘별’인 28수의 갯수를 보면 흥미롭다. 최대인 남방 칠수의 ‘익’자리는 22개의 별로 별자리를 이루고 있지만, 동방칠수의 ‘각’자리를 비롯한 ‘허’, ‘실’, ‘벽’자리는 단 2개의 별로만 되어있다. 이 수치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기엔 갯수의 편차가 너무 커서 기준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 하나의 별만으로는 별자리를 이루지 못하고 2개는 되어야 별자리가 된다는 점에서, 28수 각각의 별의 갯수에 나누기2 를 한 수치를 쓰기로 한 것이다. 다른 구성원리인 ‘자리’는, 각 별자리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각 자리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별글체에 반영시키기로 하였다.
각 방위, 즉 사방칠수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방위값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 더 있는데, 마찬가지로 천문을 바탕으로 탄생된 사상오행이다. 사상오행의 핵심개념인 10간과 12간지역시 방위값이 있다. 이것 역시 우측의 별자리와 같이 한 데 나열되어 있는 방위표를 보면 흥미롭다. 이 방위표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훈민정음에서 세종은 초성을 12지에 배속시켰고, 중성은 10간에 배속시켰다고 하였다. 또, 천문방각도에서는 혓소리인 ㅌ, ㄷ, ㄴ은 사, 오, 미에, 어금니 소리인 ㅋ, ㄱ, ㆁ은 인, 묘, 진의 기운을 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성 ㅏ는 갑의 자리에 배속되어 있어 28수 중 심과 미에 발하는 별자리의 기운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28수와 28자가 정확하게 1:1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글이 28수로부터 왔다는 것 자체가 가설이기 때문이다. 다의적인 한자와 28수의 성격을 극복하고 1:1 대응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력한 기준을 세울 필요성이 있었다. 천문방각도에서는 동방칠수에 배치된 12지가 진묘인이고, 이것이 어금니 소리인 ㆁ, ㄱ, ㅋ의 기운을 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북방은 목구멍소리, 서방은 잇소리, 남방은 혓소리의 기운을 발하고 있다. 사방칠수 방위의 성격을 발음으로 구분한 것다. 마찬가지로 10간에 배치된 중성도 소거법과 강력한 기준의 분류로 배치하면, 최종적으로 28개의 한글과 28개의 별을 연결지을 수 있다.
사방칠수를 발음으로 구분했으니, 국제음성기호 IPA의 발음 기호를 형태적 모티프로 삼을 수 있겠다 싶었다. 동방의 어금니소리(아음), 북방의 목구멍소리(후음), 서방의 잇소리(치음), 남방의 혓소리(설음)의 발음 기호들을 정제하여 위와 같은 4개의 그래픽 모듈을 제작하였다. 여기에 각각의 별의 갯수를 적용하면, 해당되는 갯수만큼의 그래픽 모듈을 사용한 패턴, 즉 딩벳으로 치환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ㄱ’은 12지중 ‘묘’의 기운을 발하는 동방칠수이자 어금니 소리이며, 28수 중 소거법으로 별자리 ‘저’ 에 배당되었으며, 4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나누기 2를 적용하여 그래픽이 탄생되는 것이다.
별자리로부터 시작한 글자라는 뜻과 별처럼 아름답고 빛을 내는 글 혹은 글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별글’이라는 이름을 붙여 폰트의 이름을 ‹별글체›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