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Lee Hye 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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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을 통해 읽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 연구는 한국의 근대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현대의 기술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1930년대 소설가 박태원은 하루 동안 특별한 목적지 없이 경성 도심을 방황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불운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청년인 그는 삶의 대단한 목표 없이 하루를 허비하는 자신을 빗대어 <구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30년대 경성 도심과 인간 군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발길 닫는 데로 걷는 그의 하루와 같이 이 소설은 기승전결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짧은 사건과 그때의 단상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근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던 격동의 시기 인간미를 상실해 가고 물질만능을 쫓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녔지만 동시에 그에 편승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무기력한 지식인에 대한 모습을 담고 있다. 약 한 세기가 흐르고 현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모습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그 사회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미시적인 삶은 오히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한 세기의 시간을 넘어서 서울이라는 같은 장소 속에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도시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구자의 시각으로 기존의 책과는 다른 형태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원문 속 여덟 장소에서 일어나는 여덟 가지 에피소드를 발췌해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구보가 다녀간 장소와 그곳에서의 짧은 에피소드 혹은 그가 일시적으로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들로 구성된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선행된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은 다음에 나올 장소에서의 이야기와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각 에피소드들을 개별적 이야기로 두고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하다. 오히려 순서 없이 이야기를 독자가 읽음으로써 구보의 어느 하루가 아닌 하루로 축약된 그 시절에 매일 그가 느꼈을 일상의 외로움과 고뇌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책의 형태 또한 정사각형의 각 장이 개별로 독립된 형태로 이야기의 구조와 형태를 같이한다.

여덟 장의 증강현실

책 속 텍스트는 글로서 의미를 가지나 이미지로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다. 언어 자체의 의미나 논리성을 배제하고 문자를 도형을 그리듯 지면 위에 시각적으로 배열한 구체시와 같이 증강현실의 다층구조적 배열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다. 모든 장 의 증강현실이 각기 다른 방식의 시각화로 그 페이지의 이야기를 한 가지 상징적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준다. 장마다 달라지는 숨어있는 트릭을 찾는다는 설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읽는 기대감과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고자 한다.